빌럼 판하네험

최근 수정 시각:  (5년 전)
네덜란드의 축구감독
이름
빌럼 판하네험
Willem van Hanegem
출생
1944년 2월 20일 (82세) /
네덜란드 브레스켄스
국적
신체
185cm
직업
축구선수 (미드필더 / 은퇴)
축구감독
소속
선수
벨록스 SC[1] (1962~1966)
크세르크세스 (1966~1968)
페예노르트 로테르담 (1968~1976)
AZ'67 (1976~1979)
시카고 스팅 (1979)
FC 위트레흐트 (1979~1981)
페예노르트 로테르담 (1982~1983)
감독
USV 홀란트 (1990~1992)
페예노르트 로테르담 (1992~1995)
알 힐랄 FC (1995~1996)
AZ 알크마르 (1997~1999)
스파르타 로테르담 (2001)
FC 위트레흐트 (2007~2008)
국가대표
52경기 6골 (네덜란드 / 1968~1979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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별명
오자 다리 (De Kromme)



목차
1. 개요2. 클럽3. 국가대표4. 지도자 경력5. 여담6. 인종차별 논란

1. 개요 [편집]

네덜란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.

공수 모든 부분에서 완성된 기량을 갖추었으며 왼발 아웃프런트 킥으로도 유명했다. 이 덕분에 De Kromme(오자 다리)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덤. 1974년 네덜란드의 월드컵 준우승과 페예노르트의 유러피언컵 우승 멤버 중 하나이다.

2. 클럽 [편집]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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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62년 위트레흐트를 연고로 하는 벨록스 SC에서 데뷔했다. 1966년에는 크세르크세르로 이적했고 1967-68 시즌 리그에서만 26골을 넣는 대 활약으로 득점랭킹 상위권에 마크된 바 있다.

1968-69 시즌을 앞두고 하네험은 페예노르트로 이적했고 곧바로 팀의 핵심 미드필더가 된다. 이 시즌 팀은 리그와 컵대회에서 더블을 기록했다. 1969-70 시즌에는 네덜란드 클럽으로는 처음으로 유러피언 컵을 재패하는 데 공헌했으며 1973-74 시즌에는 UEFA 컵 우승에 공헌했다.

1976년 페예노르트를 떠난 하네험은 AZ, 미국 무대, 위트레흐트를 거쳐 1981년 다시 페예노르트로 돌아왔고 1983년 은퇴를 선언했다. 여담이지만,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했다.

3. 국가대표 [편집]

1968년부터 1979년까지 52경기 6골을 기록했다. 메이저 대회로는 1974년 서독 월드컵, UEFA 유로 1976에 참가했다. 두 대회에서 각각 준우승, 3위라는 성적을 거두었다.

4. 지도자 경력 [편집]

페예노르트 시절 리그 우승 1회, 컵 대회 우승 2회, 알 힐랄 시절 리그 우승 1회, AZ 시절 2부 리그 우승 1회 등의 기록이 있으나 선수 시절 명성에 비하면 그렇게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.

5. 여담 [편집]

제2차 세계 대전 도중 가족들이 폭격으로 사망해서 전범국 독일을 좋아하지 않는다.

6. 인종차별 논란 [편집]


최근 방송을 통해 위트레흐트에서 뛰던 시절 허정무에게 인종차별적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알려져 몇몇 커뮤니티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바 있다.[2]

[1] 1970년 FC 위트레흐트의 창단 과정에서 합병되었다.[2] 5분 정도부터 나온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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